【에이블뉴스 김시내 칼럼니스트】부모가 자녀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는 일은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다. 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가고, 예방접종 순서를 기다리며 등을 토닥이고, 진료실 앞에서 울음을 달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익숙한 장면은 조금씩 방향을 바꾼다. 어느 날부터는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병원을 찾는다. 접수를 대신하고, 증상을 설명하고, 진료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돌봄은 한쪽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꾸어 간다.

필자에게도 그 삶의 시간이 부모님의 몸을 통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최근 어머니께서 허리가 편찮으셔서 모시고 병원을 함께 찾은 적이 있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간호사의 시선은 곧장 휠체어를 탄 나에게 향했다. 어머니가 접수를 하고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시선은 방향을 잃은 듯 흩어졌다.

나는 어머니가 혹시 빠뜨릴지 모를 증상을 대신 설명하고, 위가 좋지 않으시니 약 처방 시 주의를 부탁드리며,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함께 간 자리였다. 보호자로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나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으로 읽히고 있었다.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온 보호자가 아니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얘도 같이 왔어요” 하며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온 장애 자녀쯤으로 보였던 것이다.

휠체어가 내 역할을 지우지는 못한다. 다만 그곳에서는 내가 맡은 자리보다 휠체어를 탄 몸이 먼저 읽히고 있었다.

그 인식은 진료실 앞에서도 이어졌다. 간호사는 시술 전 어머니에게 어떤 치료를 받을지, 치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설명한 뒤 나를 힐끗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AI 생성 이미지 . ©김시내 AI 생성 이미지 . ©김시내

“치료 시간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 따님은 어떻게 기다리죠?”

순간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이 터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 잘 놀아요!ㅎㅎ”

짧은 농담이었지만 그 안에는 익숙한 현실이 담겨 있었다. 나는 보호자로 함께 온 성인이었지만, 병원은 끝내 나를 혼자 기다리기 어려운 사람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사실보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더 앞섰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였지만, 병원은 끝까지 나를 보호 대상으로 읽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매우 주도적인 성격이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는 편이고, 가족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역할을 맡아 왔다.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면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 역시 내게도, 우리 부모님에게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 부모님이 나를 ‘장애인으로’ 키우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장애를 이유로 역할을 제한하거나 늘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두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다른 상상을 품고 있다. 장애인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 누군가의 돌봄 안에 있어야 하는 존재로 쉽게 규정된다. 그 안에서 장애인이 가족을 돌보는 사람일 가능성, 책임을 맡는 사람일 가능성, 누군가의 보호자일 가능성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보이지만, 역할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장애를 너무 오랫동안 ‘받는 위치’로만 이해해 왔다는 데 있다. 도움을 받는 경험은 장애인의 삶에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장애인의 전부는 아니다. 장애인은 돌봄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돌보기도 하고, 지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책임지기도 하며, 배려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날 병원에서 내가 본 것은 간호사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니었다. 장애인을 한 자리로만 고정해 온 사회의 오래된 익숙함이었다.

휠체어를 탄 몸은 누군가를 돌보지 못하는 몸이 아니다. 사회가 아직 그 장면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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